주한영국문화원은 한국인 최초로 테이트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이숙경 박사의 영국문화계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문화와 계급적으로 소외된 이스트 엔드에 세워진 공공 미술관
전 세계 금융 중심지 중 하나인 런던 ‘시티’ 지역에서 불과 10여분 거리에 있는 화이트채플 지역은, 런던의 주거 지역 중에서도 특히 인종적으로 다양한 인구가 모여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화이트채플가를 가득 채운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상점들, 인디언 레스토랑, 이 곳곳을 바쁘게 오가는 회교도 차림의 주민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거리가 정말 런던 안에 있는 것인지를 되묻게 할 만큼 이국적이다.
과거 산업혁명 시대와 빅토리아 시대에는 매춘 및 범죄의 산실이기도 했던 화이트채플 지역은, 문학가 찰스 디킨스가 표현한 런던 빈민가의 사회적 문제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었다. 세계 곳곳의 식민지에서 모아들인 부와 새로운 과학 기술을 이용한 산업 혁명의 성과들이 런던 웨스트 엔드(West End)의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는 동안, 계급(혹은 계층)적 위계질서가 엄격했던 19세기의 런던은 이스트 엔드(East End)를 지상의 지옥같은 상태로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이트채플 갤러리(Whitechapel Gallery)는 이러한 이스트 엔드에 제대로 된 미술을 소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1901년 문을 열었다.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런던 중심가에 집중돼 있었던 당시, 문화적으로나 계급적으로 소외된 이스트 엔드에 공공 미술관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미술과 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 의 일원이었던 찰스 해리슨 타운젠드(Charles Harrison Townsend)의 건축으로 미술관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지역사회 중심, 교육 중심의 운영 정책, 그리고 공익적 성격은 그 틀을 확고히 잡았던 것이다.
기존 관념에 도전하는 혁신적 전시를 기획해 온 화이트채플 갤러리
1901년 개관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기존 관념에 도전하는 혁신적인 전시회를 많이 기획했다. 1939년 스페인의 내전을 비판하는 현실주의적 작품으로 만들어진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보여진 곳이 화이트채플 갤러리였고, 영국 최초로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등 유럽 이외의 국가에서 벌어지던 미술 현황을 전달하는 전시들도 이곳에서 열렸다. 주민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학교 등 커뮤니티 공간에서 벌어지는 워크숍 같은 제도 또한 화이트채플 갤러리가 선구적으로 시도한 것이었고, 미술을 통해 삶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다양한 방식이 실험되었다.
화이트채플 갤러리가 미술계 자체에 끼친 영향 또한 적지 않았다. 1956년 개최된 영국 현대미술가들의 그룹전 <이것이 내일이다(This is Tomorrow)>는, 이후 1960년대 영국과 미국 미술계를 사로잡은 ‘팝 아트’의 선구를 연 작가들의 일종의 프로토-팝(proto-Pop) 전시였다.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에두아르도 파올로치(Eduardo Paolozzi), 빅터 파스모어(Victor Pasmore) 같은 미술가들 뿐만 아니라 테오 크로스비(Theo Crosby), 존 맥헤일(John McHale), 제임스 스털링(James Stirling) 같은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함께 참여한 본격적인 혼합 장르적 프로젝트로서, 이 전시는 말 그대로 예술과 문화의 융합을 예견한 혁신적 사건이었다. 해밀턴이 이 전시에서 선보인 콜라주 작품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는 대중 잡지의 광고와 소비주의 아이콘들을 포함하여, 팝 아트의 장을 연 첫 작품으로 간주되곤 한다.
한편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서구 미술의 중심이 파리로부터 뉴욕으로 옮겨가기 이전부터 동시대 미국 미술가들의 작품 세계에 관심을 가진 곳이기도 했다. 1958년에 개최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개인전과 1961년에 열린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개인전은, 두 작가가 아직 대가의 대열에 오르기 전 열린 첫 영국 전시라는 점에서 큰 역사적 의미를 지녔다. 또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길버트와 조지(Gilbert & George), 리처드 롱 (Richard Long) 같이 이후 영국 미술을 대표할 작가들에게 1970년대 초 중요한 전시 기회를 제공한 것도 화이트채플 갤러리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젊은 작가들에게 있어 이 갤러리가 한 역할은 핵심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간과 프로그램 확장을 통한 지역사회와의 연계 강화
1960년대와 70년대 들어 다른 공공 미술관들이 문을 열고 교육 중심의 미술관 프로그램이 보편화되면서, 미술계 내에서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독자적인 지위는 다소 축소되었다. 그러나 다문화주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적 융화가 필요해지고 이스트 엔드 자체의 인종적, 종교적 이슈가 부각되면서, 최근에는 갤러리의 프로그램을 통한 지역사회 및 교육 기관과의 연계가 다시 강화되고 있다. 2009년 4월에 완료된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확장 프로젝트는 1천 3백 5십만 파운드(한화 약 230 억 원 상당)가 소요된 대규모 사업으로서, 이러한 지역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고자 하는 대응이었다. 갤러리 바로 옆에 자리했던 화이트채플 도서관이 근처의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게 되면서, 이 공간을 갤러리의 미래를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계획이 구체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확장 프로젝트로 인해 이제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전체 공간은 거의 두 배로 늘어났고, 뉴 커미션, 교육, 아카이브 전시 및 자료 열람실, 레스토랑 등을 위한 공간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갤러리의 확장은 공간 뿐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에 중요한 발전과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재개관 후 첫 전시로 열린 독일 현대 미술가 이자 겐츠켄(Isa Genzken)의 개인전으로부터 프랑스의 개념 미술가 소피 칼(Sophie Calle), 레바논 출생의 현대 작가 월리드 라드(Walid Raad), 아일랜드의 뉴 미디어 작가 제라드 바이런(Gerard Byrne) 등에 이르기까지 최근 화이트채플 갤러리가 선보인 기획전들은, 현대미술의 첨예한 이슈들을 다루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면밀히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들이다. 공공 컬렉션 및 세계적인 개인 컬렉션들을 소개하는 소규모 전시들도 동시에 이어지면서, 국제적 수준의 영국 미술과 세계 미술의 단면을 포괄하는 프로그램이 정착되고 있는 모습이다.
화이트채플 갤러리가 전시를 비롯한 모든 활동에서 예술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지역과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면서도 갤러리의 궁극적인 역할은 뛰어난 미술가들과 미술 활동을 지원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반 대중과 예술 문외한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예술적 우수성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훌륭한 예술을 향수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갤러리의 창립 목적에 반한다는 원칙은, 예술의 사회적 향유를 지향하는 모든 미술 기관들이 다시금 되새겨 볼만한 모델이다.
필자: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 큐레이터 이숙경
이숙경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던 이숙경은 1996년 런던 시티대학 예술비평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고 이후 에섹스 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내 다양한 예술 기관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말 테이트리버풀로 옮겨 큐레이터이자 테이트 미술관의 아시아-태평양 소장품 구입위원회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에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