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 알버트 미술관 전경 © British Council
빅토리아 & 알버트 미술관 전경 ©

British Council

주한영국문화원은 한국인 최초로 테이트에서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이숙경 박사의 영국문화계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빅토리아 & 알버트 미술관의 설립 배경

1851년 런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the Great Exhibition of Industry of All Nations)’는 19세기 서구 열강의 산업화된 기술력과 예술적 성취를 자랑하는 무대였다. 진보된 과학과 기술, 막대한 식민지, 세계적인 무역망 등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우위를 선점한 대영 제국은,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 알버트 공이 주도한 대박람회를 계기로, 열강 중에서도 더욱 돋보이는 세계적 리더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졌다. 지금은 V&A 라는 약칭으로 흔히 불리는 빅토리아 & 알버트 미술관은, 만국산업박람회의 성공을 기념하고 그 성과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생산품 박물관(Museum of Manufactures)’이라는 이름으로 1852년 문을 열었고, 두 차례의 장소 이전을 거쳐 1857년 현재의 위치인 사우스 켄징턴에 자리 잡았다. 1899년 대규모 미술관 증축의 시금석을 놓는 행사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한 이래, V&A는 장식 미술과 디자인 분야의 전문 미술관으로서 세계적인 컬렉션과 전시의 역사를 쌓아 왔다.

빅토리아 & 알버트 미술관의 컬렉션

미술관의 설립 역사가 말해 주듯이, V&A는 개관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예술의 문호를 모든 이들에게 열어 대중의 예술 감각을 드높이고 디자이너와 제조업자들의 미적 수준을 고양하는 데 주력해 왔다. 시간적으로는 2천여 년의 인류 역사를 아우르고, 공간적으로도 유럽, 북미, 중동, 북아프리카, 아시아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는 미술관의 컬렉션은, 이제 오브제와 참고 자료 각기 2백만 점이 넘는 규모를 자랑한다. 금속공예, 가구, 섬유 등 장식 미술품뿐만 아니라 회화, 조각, 드로잉, 판화 등 순수 미술 분야까지 포함함으로써, V&A 컬렉션은 미술관의 설립 초기부터 미술과 디자인의 통합적이고 광범위한 역사를 보여주는 데 주력해 왔다.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미술관 등이 이후에 설립되면서, V&A의 컬렉션은 점차 회화, 조각 등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지만, 사진과 컴퓨터 미술 등 과학과 미술의 접점에 놓인 예술 장르는 여전히 컬렉션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V&A의 초대 관장이었던 헨리 콜(Henry Cole)은 스스로 아마추어 사진가이기도 했으며, 미술과 테크놀러지의 만남이라는 사진의 독특한 역사적 위치를 일찌감치 인식한 선각자였다. 현재 5십만 점이 넘는 V&A의 사진 컬렉션은 사진이 발명된 19세기 후반부터 그 역사의 현장을 동시대적으로 반영해 왔으며, 사진 매체의 기술적, 예술적 발전과 변모를 밀접하게 기록해 왔다. 1858년에 세계 최초로 사진 전시회를 연 미술관이기도 한 V&A는,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가 1887년 제작한<동물 이동(Animal Locomotion)> 연작,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Julia Margaret Cameron)의 빅토리아 시대 초상 사진들, 만 레이(Man Ray)의 실험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작품들, 사진의 형식적 언어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의 작품 등, 자료 면에서나 미적으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컬렉션을 구축했다.

동시대 흐름을 보여주는 빅토리아 & 알버트 미술관의 다양한 전시

컬렉션뿐만 아니라 전시 기획 면에서도 V&A의 프로그램은 역사적인 기록과 보존뿐 아니라 동시대적 흐름과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데이빗 골드블라트: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생애(David Goldblatt: Lifetimes under apartheid)>,  <프라이빗 아이: 처음 50년 (Private Eye: The First 50 Years)> 같은 전시들은 사진과 잡지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매체에 초점을 두면서도 그 이면에 깔린 정치적 의미 또한 간과하지 않은 기획이었다. 한편 2011년 열린 <포스트모더니즘: 스타일과 전복 1970-1990(Postmodernism: Style and Subversion 1970-1990)>은 미술과 디자인뿐 아니라 대중음악과 같은 장르에서 전개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양식적 변천을 깊이 있게 살펴봄으로써 대중적으로도 큰 관심을 모은 전시였다. 이 외에도 2012년의 <헤더윅 스튜디오: 비범함을 디자인하기(Heatherwick Studio: Designing the Extraordinary)>,  2010년의 <디코드: 디지털 디자인 센세이션(Decode: Digital Design Sensations)>,  <인간을 위한 이야기들: 현대 코믹스(Stories for Humans: Contemporary Comics)> 등은 전시들을 통해, 미술관은 전통적인 장식 미술이나 디자인 분야뿐 아니라 이들의 현대적 진화 및 통섭적 발전을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있다.

관객과의 소통 및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관객을 끌어들이고자 하는 노력은 영국의 모든 미술관에 공통된 것이지만, 특히 V&A는 최근 수년 간 ‘늦은 금요일(Friday Late)’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관객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전통적으로 장식 미술과 디자인 애호가들, 미술관 관람객들이 주로 중년층 이상의 연령대에 집중되었던 점을 인식하고 보다 젊은 연령의 관객들에게 초점을 맞춘 이 프로그램은, 퍼포먼스, 무용, 대중 음악 등에 바탕을 둔 이벤트와 함께 매주 금요일 미술관의 입장 시간을 밤 10시까지 연장했다. 기대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런던의 주요 문화 이벤트로 자리 잡은 이 프로그램은 이제 런던의 다른 미술관들에서도 도입하여, 문화의 폭을 가장 젊고 동시대적인 경계까지 넓히는데 기여하고 있다.

2013년 3월부터 개최 중인 <데이빗 보위는…(David Bowie is)> 전시회로 인해 V&A에 대한 관심은 미술계뿐 아니라 대중음악, 패션 디자인, 앨범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로 다시 한 번 확산되고 있다. 영국 대중 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인 보위의 개인 아카이브로부터 선별된 사진, 의상, 가사 메모 등 300여점의 자료들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보위라는 한 음악인의 개인적 세계를 넘어 그로 대변되는 한 시대의 문화와 정서를 포괄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순수 미술의 경계가 확산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디자인과 응용 미술 분야가 지닌 대중성을 능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V&A 프로그램에 대한 적극적인 대중의 반응에서 또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다. 

 

필자: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 큐레이터 이숙경

이숙경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던 이숙경은 1996년 런던 시티대학 예술비평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고 이후 에섹스 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내 다양한 예술 기관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말 테이트리버풀로 옮겨 큐레이터이자 테이트 미술관의 아시아-태평양 소장품 구입위원회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에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