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영국문화원은 한국인 최초로 테이트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이숙경 박사의 영국문화계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버밍엄의 대표적인 공공 갤러리, 이콘 갤러리 

20세기 중후반에 걸쳐 미술이 고급 예술이라는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시립 박물관, 미술관, 동시대 미술을 전시하는 공공 갤러리가 여러 도시들에 다수 설립된 바 있다. 그 결과, 영국의 지방 도시들과 작은 타운들에서도 런던 못지 않게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풍부해졌다.

1965년 버밍엄에 문을 연 이콘 갤러리(Ikon Gallery)는 이런 의도에서 세워진 공공 갤러리들 중 하나로, 창립 당시부터 뛰어난 예술성(artistic excellence)과 혁신성(innovation)이 접근성(accessibility)과 결합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실천해 온 곳이다. 재무 전문가이자 미술 애호가였던 앵거스 스킨(Angus Skene)의 재정적인 도움으로 버밍엄 미술 대학에서 강의하던 네 명의 미술가들 – 데이빗 프렌티스(David Prentice), 실바니 메릴리언(Sylvani Merilion), 제시 브루튼(Jesse Bruton), 로버트 그로브즈(Robert Groves) – 이 설립한 이 갤러리는, 당시 버밍엄의 미술계가 그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미술가들에게 그다지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따라서 새로운 독립 갤러리인 이콘의 역할은 중견 및 신진 미술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면모를 보다 많은 대중들과 공유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이콘은 기성 미술계와 갤러리에 대한 반론이다. 시각적 아이디를 친근히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시작되었다”는 창립사는 이런 목적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수한 접근성을 통해 대중성 확보와 국제화를 성취한 이콘 갤러리  

이콘 갤러리의 전시는 지난 50여년 간 줄곧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스킨과 프렌티스가 애초에 계획한 갤러리는 물리적인 공간 없이 지속적으로 작품을 순회하는 일종의 ‘벽이 없는 갤러리’였지만, 실제로 갤러리가 문을 연 곳은 시내 중심가 쇼핑 센터의 작은 키오스크였다. 이후에도 몇 차례 갤러리가 이전되었는데, 1972년 뉴 스트리트 기차역 쇼핑센터로 갤러리를 이전한 후에는 더 더욱 많은 관람객이 확보되었다. 또한 영국 국내 작가층을 폭넓게 아우르는 동시에 국제 미술계의 단면을 소개하는 야심적인 전시들을 전개한 덕분에 버밍엄시의 중요한 예술적 토대로 확고히 자리잡을 수 있었다.

1997년, 이콘 갤러리는 고딕 양식의 학교를 개조한 현 공간으로 다시 한 번 이전한다.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국제 미술계를 소개하는 전시 프로그램들을 기획했다.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으로부터 남아시아, 중동,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의 미술을 아우르는 전시를 통해서, 비서구 미술에 대한 관심이 이미 수 년 전부터 전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질리언 웨어링(Gillian Wearing), 마틴 보이스(Martin Boyce), 수잔 필립스(Susan Phillipsz), 리처드 빌링엄(Richard Billingham), 라이언 갠더(Ryan Gander) 등 영국의 주요 중견, 청년 작가들의 개인전을 중시함으로써, 작가들을 지원하겠다는 갤러리 미션을 충분히 실천하면서도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접근성’에 대한 이콘 갤러리의 관심 또한 오늘까지 이어지는 창립 정신 중 하나로, 갤러리는 전시와 관련된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 가족 방문객을 위한 프로그램, 지역 주민 및 학교와 연계한 독립적인 교육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의 미술관 교육이 전반적으로 그렇듯, 이콘 또한 ‘미술에 대한’ 교육보다는 ‘미술을 통한’ 교육의 측면에 주목하여, 어떻게 관람객과 갤러리의 관계, 관람객과 미술의 관계를 더욱 심화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버밍엄을 국제적인 미술관 도시로 도약시키기 위한 '이콘 2' 프로젝트

반 세기의 역사를 지닌 이콘 갤러리는 2020년을 목표로 ‘이콘 2’ 계획을 최근 발표한 바 있다. 런던과 버밍엄을 연결하는 초고속 열차 사업 계획과 연계된 이 프로젝트는, 버밍엄시 이스트사이드 지구에 새로운 미술관을 짓고, 이 일부로 이콘의 두 번째 갤러리를 설립하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최종 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초고속 열차 사업이 무산될 경우, 이콘의 중장기 발전 계획도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버밍엄시의 대표적 미술 기관이자 동시대 미술의 대표적 갤러리 역할을 지속할 것임은 분명하다.  

 

필자: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 큐레이터 이숙경

이숙경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던 이숙경은 1996년 런던 시티대학 예술비평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고 이후 에섹스 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내 다양한 예술 기관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말 테이트리버풀로 옮겨 큐레이터이자 테이트 미술관의 아시아-태평양 소장품 구입위원회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에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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