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즐기는 시민들 © VisitBritain, Grant Pritchard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 ©

VisitBritain, Grant Pritchard

주한영국문화원 후원으로 국립극장 신민경 프로듀서와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성무량 공연기획팀장이 2013 영국문화원 에든버러 쇼케이스에 다녀왔습니다. 신민경 프로듀서의 후기에 이어 성무량 팀장의 후기, '지금 우리에게 에든버러는 어떤 의미인가'를 5편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짝사랑으로 시작한 에든버러

지자체의 공연예술 브랜드나 새로운 축제의 방향성을 이야기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축제가 에든버러(Edinburgh)와 아비뇽(Avignon)이었다. 특히 에든버러는 <난타>나 <점프>의 성공사례를 시작으로 많은 한국 공연 단체들의 꿈의 장소로 지난 10여 년간 회자하였다. 그래서 많은 단체가 자비를 들여서 여름이면 에든버러에 진출해왔다. 필자도 2005년부터 기대에 차서 에든버러 조그만 공연장이나 마당에서 공연되던 한국 공연들을 기억한다. 기대만큼 실망도 커서 마치 첫사랑을 다시 만나 상처받은 것처럼, 그 아린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고 민망하다.

그녀의 정체는

그렇다면 다시 에든버러 프린지(The Edinburgh Festival Fringe)를 바라본다는 건 어떤 것일까? 사실 에든버러는 생각만큼 그 정체가 쉽사리 드러나는 축제는 아니다. 일단 에든버러에는 프린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12개의 축제가 일 년 내내 펼쳐지고 있다(물론 이 중에서 대부분은 8월에 진행된다). 그리고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축제(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는 오히려 프린지에 그 명성을 뺏긴 것 같은 아이러니도 존재한다(프린지가 처음 인터내셔널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그룹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물론 여러 축제의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넓어서, 밀리터리 타투(Military Tattoo), 북축제, 재즈 페스티벌, 다문화 축제 등 여름 한 달여 동안 에든버러는 매일 화려한 불꽃놀이를 배경으로 포커스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만화경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내가 알던 에든버러

내가 처음으로 에든버러에 간 것이 아마도 2007년 쯤이었던 것 같다. 영국문화원 공식 쇼케이스에 초청되어서 다른 한국 프리젠터들과 함께였다. 영국에서 공부했지만 공연예술에 종사하면서 업무로 다시 찾은 영국, 아니 에든버러는 신선하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했다. 2천 개가 넘는 공연이 200곳이 넘는 곳에서 한 달여 동안 펼쳐지는 에든버러 축제는 뉴커머에게는 너무나도 먼 당신이었다. 모든 것이 미리 확정되어 진행되는 영국의 행사에서도 난 아는 사람이 없어서 오프닝 리셉션 내내 와인잔을 들고 높은 천정만 바라보았었다. 물론 간혹 보이는 아시아 프리젠터와 눈웃음을 나누기는 했지만, 왠지 에든버러 축제에서의 한국의 위상을 느낀 것 같아 씁쓸했다. 이후로 많은 한국 팀들이 프린지의 문턱을 두드렸고, 일부는 성공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 에든버러 프린지에 대한 한국말 책자도 출간되고, 축제 사무국에서 한국을 방문해 에든버러 진출에 대한 노하우들을 나누기도 했다. 한국 단체의 진출 경험담을 열심히 경청하기도 하고.  

하지만 어느 순간 매력을 잃어버린 애인을 대하듯 에든버러를 보게 되었다. 그 매력을 다 알아버려서 더 이상 가슴이 뛰지도 보고싶지도 않아진 것이다. 진정 에든버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까지 서너 차례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본 에든버러가 그 모습을 속내까지 다 보여준 것일까? 

 

필자:  성무량

현재 대전문화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영국 서섹스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위드 시네마,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한국공연예술센터 등에서 경력을 쌓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