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영국문화원 후원으로 국립극장 신민경 프로듀서와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성무량 공연기획팀장이 2013 영국문화원 에든버러 쇼케이스에 다녀왔습니다. 두 분의 참가 후기를 몇 편에 나누어 소개합니다.
2013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통해 본 영국 공연 예술의 현재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전 세계 우수한 공연들을 초청하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자유참가작 중심의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Edinburgh Fringe Festival)과 문학 페스티벌, 필름 페스티벌, 밀리터리 타투(Military Tattoo) 등 에든버러에서 여름에 열리는 모든 행사를 총칭한다. 축제 마지막 주에 열리는 영국문화원 쇼케이스는 영국문화원의 초청을 받은 전 세계 200여명의 주요 극장 및 축제 관계자들이 일주일 동안 영국 공연예술계의 최신 공연들을 함께 관람하고, 네트워킹 파티를 통해 서로의 관심 분야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행사로, 2년마다 개최된다. 올해는 한국에서 국립극장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이 초청받았으며, 뉴욕 링컨센터(Lincoln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중국 국가대극원(National Centre for the Performing Arts), 남미의 이베로 아메리칸 페스티벌(Ibero-American Theater Festival), 홍콩아트페스티벌(Hong Kong Arts Festival),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Sydney Opera House) 등의 프로듀서들이 함께 초청받았다.
프로듀싱 씨어터의 약진, 극장 간 공동제작이 두드러져
영국문화원 쇼케이스의 장점은 런던과 웨스트엔드 이외의 잉글랜드 지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다양한 공연예술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는 영국문화원에서 20편의 연극, 무용, 복합장르 공연들을 에든버러 축제 기간에 기획자들이 전막 공연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번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제작극장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특히 런던의 배터시 아트센터(Battersea Arts Centre)가 제작한 케이트 템페스트(Kate Tempest)의 <브랜드 뉴 에이션트(Brand New Ancient)>와 페이퍼 시네마(The Paper Cinema)의 <오디세이(The Paper Cinema's Odyssey)>는 관객과 평단의 고른 호평을 받았다. 젊은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한 케이트는 본인이 쓴 서사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라임과 운율이 섞인 랩을 치기도 하면서 네 명의 연주자들과 함께 새로운 퍼포먼스를 탄생시켰다. 밤 11시에 시작해 자정 넘어 끝나는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극장은 새로운 공연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관객들로 매일 밤마다 성황을 이뤘다. 페이퍼 시네마는 서양의 고전 ‘오디세이’를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정교한 3D 팝업북을 공연으로 옮긴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라이브밴드의 음악과 음향효과까지 더해져 재미를 증폭시켰다.
런던의 영빅(Young Vic)은 비엔나 오페라하우스(Schauspielhaus Wien)와 함께 극단 액터스 투어링 컴퍼니(Actors Touring Company)의 <이벤트(The Event)>를 공동 제작해 올해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최고 화제작을 탄생시켰다. <이벤트>는 영국의 대표 극작가 데이빗 그레이그(David Greig)의 신작으로 유럽에 만연한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날카로운 문장과 짜임새 있는 구성,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였다. 트래버스 씨어터(Traverse Theatre)와 웨일즈 밀레니엄 센터(Wales Millennium Centre)는 영국의 각 지방에서 모인, 한국으로 치면, 경기, 강원, 경상, 전라도 출신의, 네 명의 음악인들이 인디밴드를 결성해 좌충우돌하는 음악극 <나는 밴드를 한다(I’m with the Band)>를 공동 제작해 주목받았다.
새로운 극형식에 도전하는 공연들 - 멀티미디어, 비주얼 씨어터, 장소 특정형 공연들도 다수 올라갔지만, 단체가 가지고 있는 명성에 비해 새로운 미학적 실험이나 도전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상당 부분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게코(Gecko)의 <미싱(Missing)>과 씨어터 오(Theatre O)의 <비밀요원(The Secret Agent)>, 크립틱(Cryptic)의 사운드 퍼포먼스(Sven Werner's Tales of Magical Realism), 톰 데일 컴퍼니(Tom Dale Company)의 작품 등을 관람했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갈 계획을 가진 예술가와 관객을 위한 조언
에든버러 축제에 참여할 예술가나 기획자들에게 영국문화원 쇼케이스가 열리는 홀수년도 마지막 주에 갈 것을 추천한다. 한 달 여의 축제가 끝나는 마지막 주가 되면, 기대 이상의 작품과 실망스러운 작품에 대한 평가들이 쏟아져 작품을 선택할 때,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린지 어워드(Fringe Award) 등 주요 수상작이 발표되고, 평론가와 기자들도 부지런히 각 공연별 리뷰와 평점을 신문과 잡지에 송고한다. 프로듀서들끼리도 까페와 술자리에서 솔직한 생각과 의견을 서로 교환하기 시작한다.
또, 홀수 년도에는 영국문화원의 초청을 받은 전 세계 축제와 극장 관계자들이 에든버러를 찾기 때문에 국제교류 네트워킹에 용이하다.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에든버러 곳곳의 공연장과 세미나장에서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문이 트이고, 낯선 곳에서도 쉽게 호감이 생기는 법이다. 친해진 사람들이 새 친구들을 소개해주는 한밤의 술자리는 각 나라의 공연예술계 정황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일본 프로듀서가 칠레 축제 감독을 소개해주고, 영국의 극장 프로듀서가 독일의 오페라하우스 관계자를 소개해주는 식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친구의 친구’와 ‘술을 곁들인 뒤풀이’는 아직 어색한 서로의 거리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그러므로 욕심껏 하루에 네다섯 편의 공연을 관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밤의 수다를 위해 체력을 비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직 국제시장에서 친분 있는 프로듀서가 많지 않을 경우, 공식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좋다. 마치 학교의 신학기가 시작하는 것처럼 리셉션과 조찬 미팅, 세미나 등에서는 낯선 인물에 대한 탐색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고, 서로의 명함을 주고받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 그렇게 눈인사를 나눈 프로듀서들과 공연장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취향이 비슷한 그룹으로 삼삼오오 어울려 일주일을 보내게 된다. 마음에 드는 공연이나, 예술가가 있어 자국 초청을 고려할 경우, 인근 지역 공동 초청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서로의 예산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각 공연장이 장르별로 특화되어 있다. 연극 관련 종사자라면, 좋은 작품과 희곡이 많은 트래버스 씨어터를 추천한다. 트래버스 씨어터는 영국 전체에서도 좋은 창작 희곡을 바탕으로 현대 연극을 배출하는 제작 극장이다.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아 신작 발표, 대표작 재공연, 희곡 워크숍 등 다양한 행사를 연중 개최하고 있다. 2013년에 주목받은 작품으로 모노드라마 <씨아라(Ciara)>, 데이비드 그레이그의 <이벤트(The Event)>, F18 전투기 조종사인 여자의 갈등을 다룬 <그라운디드(Grounded)>가 있다.
복합장르 혹은 실험적인 작품에 관심 있는 기획자와 예술가는 길디드 벌룬(Guilded Balloon), 플레전스(Pleasance), 써머홀(Summerhall), 포레스트 프린지(Forest Fringe)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특히 써머홀은 영국 밖의 해외 작품 중에서 장르 경계가 무너진 컨템퍼러리 성향이 강한 작품들로 편성돼있다. 공연뿐 아니라, 전시도 겸하고 있으며,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공연장으로 급부상했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최근 몇 년 사이에 프로그램의 수준이 고르지 않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올해에 만난 기획자들도 몇 년 전과는 달리,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의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줄었고, 한 두 작품만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내년 3월부터 신임 예술감독으로 부임할 퍼거스 리네한(Fergus Linehan, 前 시드니 페스티벌 및 더블린 씨어터 페스티벌 예술감독)이 2015년부터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의 예전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전 세계 공연예술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신민경 국립극장 프로듀서
신민경 프로듀서는 국립극장에서 국립레퍼토리시즌과 국제교류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EU 에라스무스 문더스 석사 프로그램으로 영국의 워릭대학교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대학교에서 공연예술 국제교류를 공부했으며, 이전에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에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