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 댄스 에디션 2014 / Photo taken by Eoin Carey
한국공연예술센터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오선명 무용 프로듀서가 에든버러에서 개최된 2014 ‘브리티시 댄스 에디션’을 참관하였습니다. 참가 후기 1편에 이어 2편에서는 글래스고의 트램웨이에서 감상한 작품들과 유명 안무가들의 작품에 대한 소감을 확인하세요.
네트워킹을 강화한 글래스고 트램웨이
셋째 날, 아침부터 공연예술 관계자들이 댄스베이스에 모여서 6개의 대형버스로 나누어 타고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공업도시 글래스고(Glasgow)로 이동하였다. 행운처럼 찾아온 아침 햇살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어느새 빗방울로 바뀌고 도착할 무렵에는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글래스고는 인구 70만명의 스코틀랜드 최대 도시로 영국 내에서는 3번째로 큰 도시인데, 이방인의 눈에도 도시 규모가 에든버러보다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하루 종일 실내에서 공연만 봤기 때문에 글래스고에 대한 인상을 정확히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도착한 곳은 트램웨이(Tramway)인데 퍼포먼스, 비주얼 아트, 음악, 비디오 전시 등 다양한 국제 아트 공간으로 스코틀랜드 무용의 자존심 스코티시 발레단(Scottish Ballet)이 상주해 있기도 하다. 극장과 연습실, 사무실 등이 갖추어져 있었으며, 소규모의 네트워킹 섹션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17개의 단체가 참여하여 아트마켓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2층에 마련된 아트마켓에서는 기획자 및 안무가들이 직접 작품을 소개하고 각자의 공연단체에 대해 어필하는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작지만 직접적으로 관계자들과 접촉할 수 있어서 모두들 짧은 시간 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오전에 진행된 프로그램은 대부분 쇼케이스와 작품을 소개하고 논의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오후부터는 듀엣 또는 트리오 위주의 공연을 보여주었다. 저녁 즈음에는 모든 관계자가 함께 스코틀랜드 전통적인 춤을 현대화한 참여형 공연을 즐기며 마무리하였다.
글래스고 트램웨이에서는 예술가들과의 만남, 쇼케이스, 공연, 스코티시 커뮤니티 댄스까지 자국의 무용을 최대한 많이 노출시키려는 주최측의 의도가 한층 더 고취되었다. 덕분에 모든 관계자들과 해외 프로모터들은 영국 젊은 안무가들의 성향과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늦은 밤 돌아오는 대형 버스 안에서 관계자들은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에든버러로 귀가하였다. 이처럼 잘 진행만 된다면 근교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다양한 공연들을 선보이는 것도 하나의 이벤트가 될 것이다.
재능있는 신인 안무가를 발굴하는 브리티시 댄스 에디션
영국의 젊은 안무가들의 성향도 궁금하였지만,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입장에서 굵직한 이름의 안무가들의 작품을 접하는 기회도 놓칠 수 없었다. 행사 개막작이었던 아크람 칸(Akram Khan) 의 <iTMOi >는 ‘in the mind of igor’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 ’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작품으로 독창적인 컨템포러리 카탁(Kathak)과 리드미컬하고 아크로바틱한 무용수들의 기량은 인상적이었으나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전달하기에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는 모로코계 벨기에 안무가 시디 라비 셰르카위(Sidi Larbi Cherkaoui)와 함께 ‘제로 디그리즈(Zero Degrees) (2005)’를, 프랑스 발레무용가 실비 길렘(Sylvie Guillem)과 ‘신성한 괴물(Sacred monsters)(2006)’을, 프랑스 영화배우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와 ‘in-I(내 안에)’를 탄생시키며 국내 관객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스코틀랜드 댄스시어터(Scottish Dance Theatre)의 ‘Winter, Again’ 은 모던발레가 추구하는 극적인 표현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해설이 없어도 관객이 이해하기 쉬울 정도로 전달력이 있었다. 자칫 유치해지기 쉬운 부분을 최대한 배제시키고 추상적인 표현을 쉽게 연극적 요소를 가미하여 만든 작품으로 스코틀랜드 댄스시어터의 레퍼토리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이번 브리티시 댄스 에디션의 기대작은 영국의 떠오르는 안무가 호페쉬 쉑터(Hofesh Shechter)의 신작 ‘Sun ’이었다. 사실 이스라엘 안무가이긴 하지만 영국에서 상주하여 활동하니 영국무용단으로 분류해본다. ‘Sun’은 이번 브리티시 댄스 에디션의 폐막작이였고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1분 30초의 강렬하고 특유의 몸짓이 편집되어 있는 짧은 트레일러로 신작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였다. 무용단은 에든버러에 하루 전날 도착했다고 들었는데, 하루라는 짧은 준비기간과 작품규모에 비해 비교적 작은 극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용수들의 군무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이스라엘 민속무용, 아프리카 댄스의 베이직한 리듬감과 의도적으로 구부정한 자세와 반복적인 손 제스처의 민첩함이 돋보였다. 반면에, 장면과 장면을 자주 끊고 등장하는 오브제들(양, 늑대, 인디언, 사냥꾼이 그려진 판넬)과 브리지 역할을 하는 스토리 텔러의 등장은 작품을 보는 내내 집중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호페쉬 쉑터의 자작곡 음악은 그의 음악적 선호도를 분명하게 해주었는데 섬세한 감정과 분출하는 에너지를 넘나들면서 저항과 자유로 표출되었던 폭발적인 전작과는 사뭇 다른 작품이었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어대는 구 시가지의 언덕길을 따라가다 보면 해리 포터가 탄생한 엘리펀트 하우스 카페가 유명지로 되어 이방인의 발걸음을 멈추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부른다. 무명작가가 세계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듯이, 옥석을 알아보는 눈과 열린 마인드는 공연 관계자들에게는 꼭 갖추어야 할 사항이다. 젊은 안무가들과 무용수들을 알아보고 발굴∙성장시키는 댄스 플랫폼은 창작을 중요시하는 현대의 예술 흐름에서 중요한 동력을 제공한다. 국립무용센터로 발화점 역할을 한 댄스베이스와 도시를 오가면서 4일동안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던 브리티시 댄스 에디션은 영국의 무용발전을 도모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냈고 다음 에디션을 기대해본다.
오선명
현재 한국공연예술센터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무용 프로듀서로 근무하고 있다. 파리 8대학교 무용학과에서 미학&예술 테크놀로지로 박사(Ph.D)학위를 취득하였고, 다수의 대학강단과 (사)한국현대무용협회, (사)한국현대무용진흥회에서 이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