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어 있는 것처럼 예술가와 관람객은 작품이라는 벽을 중간에 두고 만남을 가져왔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콘서트 홀, 미술관 등 전통적인 예술 공간을 벗어나 공공장소나 지역 사회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예술적 시도를 단행하는 한편, 예술 기관들이 지역 커뮤니티와 활발한 소통을 시도하면서 ‘예술가 = 창작자’, ‘관객=수용자’라는 단순했던 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참여적(participatory), 공동 창작(co-creative), 협력적 (collaborative) 등으로 불리는 예술 활동은 참여자의 능동성이라는 관점에서 예술가와 관객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는 전통적 형태의 공연이나 전시와는 다르게 예술가와 참여자는 수평적 관계를 맺고 창의적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며, 예술가는 참여자의 ‘창의적인 표현’을 촉발하고, 독려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급속한 고령화 시대를 맞아 주한영국문화원 예술 사업이 중점을 두었던 ‘Arts and Ageing’은 이러한 참여적/협력적 예술 활동에 집중하여, 한국과 영국의 예술가 및 예술전문가들이 어떻게 노인들까지 포용하는 예술적 경험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다양한 교류의 장을 마련했다.
초청했던 영국 예술가들이 공동으로 언급했던 예술 활동 참여의 이점은 창의적 자기 표현을 통해 스스로와 타인을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유희를 통해 즐거움과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종종 ‘자기 표현’과 ‘유희’는 유효기간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중증 치매 환자들과 함께 예술 활동을 진행해 온 예술가들에 의하면 예술을 통한 ‘자기 표현’와 ‘유희’는 나이나 신체적∙정신적 능력과 관계없이 우리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
과거 어느 때보다, 절대 빈곤율은 낮아졌고, 평균 수명은 연장되었고,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여전히 다양한 편견과 이로 인한 차별은 존재하며, 많은 사람들이 기회로부터 배제되어 있고, 공동체로부터의 단절이나 소통의 부재를 경험한다. 예술이 이러한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 ‘기생충’처럼 예술 작품은 사회 문제를 다층적으로 조명하고, 이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기도 하고, 1시간의 무용 워크숍이 어르신들이 이웃들과 웃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음악을 접하고, 안 쓰던 관절을 움직여 부드럽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한다.
고령화, 불평등, 지역 공동체의 와해 등은 영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국가들이 직면한 도전 과제이다. 지난 10여 년간, ‘포용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영국의 예술 정책과 이에 대한 예술 기관들의 조응에 힘입어 영국에선 노인, 장애인 등 사회 소수층을 위한 예술 활동이 확대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술의 다양한 역할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고 있고, 예술 기관들과 예술가들의 전방위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도 주한영국문화원의 예술 프로그램이 한국과 영국이 먼 길의 좋은 동반자로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영국문화원 아트 디렉터 박윤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