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9일부터 14일까지 제23회 셰필드국제다큐영화제가 개최되었습니다. 세계 3대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셰필드국제다큐영화제는 1994년 영화관이 문을 열기 직전에 처음 열렸고, 이제는 셰필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큰 축제로 자리잡았습니다.
DMZ국제다큐영화제 박해미 프로그래머가 셰필드국제다큐영화제의 탄생 배경과 전반적인 소개를 담은 후기 1편에 이어, 2편에서는 영화제 동안 열린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 네트워킹 현장, 참가 소감 등을 전달해 드립니다.
다양한 주제와 포맷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하는 셰필드다큐영화제
6월 9일부터 14일까지 6일간 열린 영화제에는 셰필드 도시 전체의 14개 스크린에서 250여 편의 다큐멘터리 상영을 포함해 35편의 인터랙티브, VR 다큐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대체 현실 Alternate Realities’ 전시, 야외상영과 파티 등의 다양한 이벤트를 선보였다. 셰필드다큐영화제(Sheffield Doc/Fest)에서 발표한 올해의 결산 자료에 의하면, 올해에는 179편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고, 6만여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올해가 24회라고 하니, 24년의 역사를 간직한 셈인데, 그 시간의 깊이만큼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하고 즐기는 애호가들도 늘어 영화가 상영되는 대부분의 극장은 만석을 이룬다. 200여 명이 넘는 감독과 제작자, 출연진이 참여해 영화 상영 후에는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상영 프로그램은 경쟁 부문과 비경쟁 부문으로 구성되는 대부분의 다른 영화제와 달리, Doc/Adventure, Doc/Love, Doc/Rhythm, Doc/Think, Doc/Visions, Doc/Retro 등의 부문으로 구성된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음악 다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다큐, 모험을 다룬 다큐, 사랑과 관계에 집중한 휴먼 다큐 등 상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주제별로 묶어놓음으로써 관객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게 작품을 선택할 수 있게 프로그래밍 해놓았다.
올해 개막작 <퀴어라마 Queerama>처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는 작품을 비롯해 선댄스영화제나 토론토영화제에서 상영되었거나, 유럽과 미국 등의 지역에서 화제를 불러모았던 작품들을 영국에 처음 소개했다. 상대적으로 아시아의 다큐멘터리를 보기는 어렵지만, 2017년 상반기 미주, 유럽 지역에서 화제작으로 떠오른 핫한 다큐멘터리를 궁금해하는 팬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 상영, 그러니까 극장에서의 상영 외에도 Sheffield Doc/Fest가 주목하는 것은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나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포맷의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Alternate Realities' 부문이다. 35편의 프로젝트를 야외 공간의 광장에 설치된 돔과 갤러리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인터랙티브(interactive)와 실감(immersive) 미디어가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어떻게, 혹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전통적인 영화 체험과 뉴미디어 형식의 새로운 영화 체험이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프로젝트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 관계자는 물론 영화를 사랑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
이외에도 다큐멘터리 제작자와 투자자들의 공동제작을 활성화하고, 투자자, 방송관계자, 배급사, 상영 관계자를 만날 수 있는 마켓도 관계자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중요한 행사이다. 전 세계에서 300여 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참여해 1,000회가 넘는 비즈니스 미팅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최신 다큐멘터리의 상영 및 VR, AR 등의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소개와 교육, 전문가들과 만남의 기회를 주도적으로 마련하며, 비즈니스 관계자를 위한 마켓까지 열리는 셰필드다큐영화제는 다큐멘터리 관계자들에게 더없이 중요한 장소이다. 하지만 이곳이 꼭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거나, 만드는 창작자들에게만 의미 있는 공간은 아니다. Sheffield Doc/Fest는 다큐멘터리 혹은 영화를 공부하거나(예비 창작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현실에 질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 혹은 자신의 스토리를 갖고 있거나 만들고 싶은 누구에게나(올해 영화제의 슬로건은 “What’s Your Story?”였다) 열려있는 곳이다. 좋은 영화가 그러하듯이,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 역시 언제나 보는 이에게 질문을 던지니까, 때로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직시와 성찰을 요구하기도 하니까, Sheffield Doc/Fest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인 셈이다.
무엇보다 Sheffield Doc/Fest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즐길 만한 ‘축제’로 만들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6월 셰필드의 기온과 날씨, 곳곳에 펼쳐진 공원과 광장이다. '영국' 하면 늘 비가 오고, 안개가 자욱한 우울한 날씨만을 상상했던 필자에게, 런던에서 셰필드로 가는 기차에서 펼쳐진 창밖의 풍경과 셰필드 날씨는 마치 영화제에 내린 축복처럼 느껴졌다. (올해는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작년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하는 걸 보면, 이런 축복이 매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밤 9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 긴 낮, 시원한 바람과 청명한 하늘, 그리고 쾌청한 햇살, 도심 곳곳에 펼쳐진 공원과 광장,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즐길 수 있는 맥주 한 잔과 차 한 잔. Sheffield Doc/Fest는 이런 셰필드 도시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서로 이어준다. 광장에 마련된 Doc/Exchange를 비롯해 야외상영장, 크고 작은 만남의 장소들은 다큐멘터리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을 강연이나 토크, 세미나, 네트워크, 파티 등으로 더욱 단단하게 엮어준다.
영화제는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매개로 한 ‘축제’라는 점에서, 셰필드는 그 축제를 펼치기에 너무나 완벽한 장소인 셈이다. 그리고 밤마다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 후 이어지는 광란의 파티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이다. 비틀즈, 퀸, 오아시스 등 내로라하는 록밴드의 출신지인 영국답게, 록밴드의 공연이 펼쳐지는 파티 역시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진지함과 무거움, 심각한 이슈들이 먼저 떠오르는 필자에게 Sheffield Doc/Fest는 진지한 다큐와 화끈한 파티, 짜임새 있는 강연 및 토크와 자유로운 수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축제로 기억될 것 같다. 셰필드에 방문할 계획이 있는 분들이라면 6월 Sheffield Doc/Fest 기간에 맞춰보면 어떨까 싶다. 좋은 다큐멘터리로 가슴과 머리를 살찌우는 동시에, 페스티발 패스를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도시를 불어넣는 생동감과 에너지를 느껴보면 좋겠다.
필자: DMZ국제다큐영화제 박해미 프로그래머
DMZ국제다큐영화제의 박혜미 프로그래머는 지난 3회 영화제부터 합류하여 올해로 6년째 영화제를 지키며 영화제의 방향 설정, 출품작 선정, 각종 프로그램 부대 행사 계획 등 영화제 전반에 대하여 총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