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s of Departure culminates a year of collaboration with Delfina Foundation, ICA, ArtSchool Palestine and the British Council, as part of the 2013 Shubbak Festival in London (22 June - 6 July) Image courtesy of ICA
주한영국문화원은 한국인 최초로 테이트에서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이숙경 박사의 영국문화계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립니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과 버킹엄 궁전을 잇는 큰 길인 ‘더 말(The Mall)’에는 영국 실험 예술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ICA (Institutes of Contemporary Arts, 컨템포러리 아츠 인스티튜트)가 자리하고 있다. 1946년 예술가들에 의해 결성되어 1968년 현재의 내쉬 하우스(Nash House)로 터전을 옮긴 이래, ICA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 예술의 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예술 기관 중 하나로 성장해 왔다. 미술 전시뿐 아니라 실험적인 영화, 복합 매체적 프로그램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포괄함으로써, ICA는 동시대의 예술과 문화를 폭넓게 아우르면서 그 다양한 변천의 역사를 반영하는 잣대 역할을 해 온 것이다.
ICA의 탄생
세계 대전의 상흔이 아물기 시작하고 예술적 향수에 대한 요구가 다시금 성장하기 시작하던 1946년, 영국 미술 평단을 대표하던 평론가 허버트 리드(Herbert Read)와 추상미술 및 초현실주의를 선구적으로 도입하고 지원했던 미술가 롤랜드 펜로즈(Roland Penrose)는 동료 미술인들과 함께 자유롭고 전위적인 미술을 논하고 전개할 수 있는 모임을 마련하는 데 뜻을 모았다. 당시의 주된 미적 담화들이 로열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펼쳐짐으로써 아카데미의 다소 보수적인 미술 취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점을 지적하면서, 리드와 펜로즈는 친분이 두터웠던 미술품 수집가, 출판인, 시인 등의 도움을 통해, 동시대의 미술가들과 저술가, 건축가, 과학자 등 다양한 지식인들이 모일 수 있는 대안적 모임으로서 ICA의 역사를 시작했다.
영국 전위 문화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ICA
옥스포드 가의 아카데미 시네마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시작된 ICA는 1950년대에 들어 메이페어 지역에 전시 공간을 마련하였고, 1968년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전시 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창립 초기부터 ICA의 구성원들은 전위적인 현대미술 프로그램을 선보였고, 펜로즈와 리드가 공동 기획한 창립전 <현대미술 40년>전은 당시 영국에서는 생소했던 입체주의 작품들을 다수 포함한 획기적인 전시였다. 젊은 미술가 에두아르도 파올로치(Eduardo Paolozzi),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윌리엄 턴불(William Turnbull) 등으로 구성되어, 모더니즘의 순수주의를 비판하고 대량 생산과 소비의 시대, 대중 매체 이미지 등을 심각하게 분석하여 팝 아트의 전신으로 불리는 그룹인 ‘인디펜던트 그룹(Independent Group; IG)’이 1952년 처음 모임을 가진 곳도 ICA였다. 팝 아트, 옵 아트(Op Art), 브루탈리즘 건축(Brutalist architecture) 등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이고, 이 외에도 다양한 예술의 신사조를 소개하는 등, ICA는1950년대와 1960년대 영국 전위 문화의 성장과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ICA는 전시뿐만 아니라 강연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동시대의 미술 담론과 비평의 틀을 마련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초대 관장 알프레드 바(Alfred Barr), 팝 아트의 대표적 평론가 로렌스 알로웨이(Lawrence Alloway), 미술사의 거장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 미국 추상미술의 대표적 이론가 마이어 샤피로(Meyer Shapiro) 등이 이미 1950년대에 ICA에서 강연한 점을 보면, ICA의 관심이 언제나 동시대성 및 현장성에 있었음을 가늠할 수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들어서도 ICA의 프로그램은 유럽 및 세계 전위 미술에 대한 관심을 크게 반영하는 것이었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한스 하케(Hans Haacke) 등이 참여한 <사회로의 미술, 미술로의 사회: 7인의 독일 작가(Art into Society, Society into Art: Seven German Artists)>, 야니스 쿠넬리스(Janis Kounellis), 루카스 사마라스(Lucas Samaras), 타키스(Takis) 등이 포함된 <여덟 작가, 여덟 태도, 여덟 그리스인(Eight Artists, Eight Attitudes, Eight Greeks)> 전시 등은,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유럽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대할 수 있는 기회를 영국 미술계에 제공한 것이었다. 퍼포먼스와 페미니즘에 바탕을 둔 헬렌 채드윅(Helen Chadwick), 메리 켈리(Mary Kelly), 독일 전후 미술의 새로운 회화 세계를 보여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동성애와 선정적 이미지를 다룬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등 이후 미술계의 거장이 된 작가들도 ICA 전시를 통해 영국 미술계에 소개되었다.
1990년대 들어 ICA는 당시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한 영국 청년 작가들과 함께 새로운 발전의 시대를 맞았다. 1991년 공공 미술 기관으로서는 최초로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개인전을 연 ICA는 창립 당시의 실험성과 전위적 방향성이 영국 미술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음을 반증할 수 있었다. 현대 미술 자체가 유례없는 대중적 관심을 끌기 시작하면서, ICA의 전위 정신은 역설적인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영화 및 음악 프로그램을 통한 복합 매체적 활동은 기관의 진보적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이어 나갔다.
ICA의 위기와 새로운 미래
2000년대 후반은 ICA에 있어 최대의 위기가 닥친 시기였다. 2005년 저술 전문가인 저널리스트가 예술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미술 분야의 전문가가 관장직을 맡는 전통이 중단되었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전시 프로그램의 약화뿐 아니라 기관 전체의 방향성 상실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또,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ICA의 문을 열고자 실행된 전시의 무료 입장 제도 또한, 전통적으로 유지되던 멤버쉽 기반을 급격히 상실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 인한 수입의 감소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 및 공공 기금 지원의 삭감에 더하여, 기관 자체의 폐쇄까지 고려해야 할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졌다.
잉글랜드 예술위원회의 개입을 통해 이 위기 상황을 넘기고 2011년 새로운 관장을 맞이한 ICA는, 이제 예술가들을 모든 활동의 중심에 두고, 익숙하지 않은 새롭고 도전적인 예술에 활동의 장을 제공한다는 창립 당시의 목적을 다시금 되새기는 모습이다. 물론 현재의 미술 및 문화계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영국 상황과 비교할 수도 없는 성장을 경험하였고, 전위적인 예술 정신 또한 주변에서 주류의 위치로 그 위상을 옮겼지만, 언제나 동시대의 가장 첨예하고 문제적인 시각을 유지하고자 하는 ICA의 자세는, 미지의 영역을 향한 예술의 최첨단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해 줄 것이다.
필자: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 큐레이터 이숙경
이숙경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던 이숙경은 1996년 런던 시티대학 예술비평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고 이후 에섹스 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내 다양한 예술 기관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말 테이트리버풀로 옮겨 큐레이터이자 테이트 미술관의 아시아-태평양 소장품 구입위원회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에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다.